이 코너에서 연재할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 1화 계유정난 – 김종서를 죽여라

-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게 된 사건. 결국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그날 밤 상황으로 돌아가 재구성해 보자.

어둠이 완전히 깃들 무렵, 수양대군은 철퇴를 가장 잘 쓰는 수하 임운을 데리고 김종서 집으로 갔다. “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히 하겠다. 임운을 데리고 가서 선 자리에서 김종서를 베고 올 것이니라.”

수양대군은 갑옷을 챙겨 입고 동지들을 향해 또 외쳤다.
“김종서 하나만 잡으면 된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p148에서 따옴

임운은 시정잡배였는데 철퇴 휘두르는 솜씨가 뛰어나 수양대군이 거두어들인 하인이었다. 김종서 집에 수양대군 일행이 도착했을 땐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가 대문에서 수하 몇을 데리고 지키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은 김종서는 긴 칼을 손이 가장 잘 닿은 곳에 고쳐 걸고 수양을 방에서 기다렸다. 며칠 전에 수양대군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군사를 풀어 주위 경계를 강화하자는 건의를 김종서는 단호히 거절한 바가 있었다. 온 나라의 군사를 손안에 쥐고 있는데 내금위 군사밖에 영향력이 없는 수양대군쯤이야 어떠랴 싶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오대산 사고본)

대문 밖.

수양대군은 대문 문턱을 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김종서를 대문 밖으로 불러내야 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긴급히 전할 말이 있으니 선 채로 전하고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마침내 김종서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수양대군은 준비한 서찰을 김종서에게 전했다. 70세 노인 김종서가 서찰을 읽기에는 너무 어두운 밤이었다. 그가 달빛을 향해 글씨를 살피려 애쓰는 순간 임운이 철퇴를 휘둘렀다.
그때 장남 김승규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쓰러지는 김종서를 부등켜 안았다. 그때 뒤따라온 김종서의 수하 양정이 칼을 뽑아 김승규를 베었다.

죽음을 확인한 수양대군은 뒷수습을 하기 위해 단종이 머물고 있던 경혜공주 사가로 재빨리 돌아갔다.  그러나 김종서는 죽지 않았다.
철퇴를 여러 번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임금이 걱정되어 여인의 가마로 변장하여 도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김종서가 아직 살아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한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 도성을 뒤지고 있었다.
차남 김승벽의 처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김종서를 잡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압송하려던 군사를 향해 수레를 준비하라고 호령하던 김종서. 그 뒤에 서 있던 양정이 칼을 휘둘러 김종서를 베었다.
한때 북방을 호령하던 대호(大虎) 김종서. 여진족들을 몰아내고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여 국경을 넓힌 그가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김종서의 죽음(KBS 역사저널)

딸린 글

김종서 가족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는 계유정난 당시 현장에서 즉사했고 차남 김승벽은 이후 도주하였다가 20일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김승규의 아내와 딸은 정인지에게 하사되어 노비로 살았다. 또한 김승벽의 아내도 홍윤성에게 노비로 하사되었다. 피붙이 중 16세 이상인 자손은 교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인 자손은 어미 손에서 자라게 하였다가 16세가 되면 섬 지역의 관노로 보내 영원히 격리케 하였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한때 인기 드라마였던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의 장녀 세령과 김종서의 셋째아들 김승유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역사를 전혀 모르는 이에겐 배경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다. 그러나 김승유는 이미 혼인하여 자식을 두고 있는 유부남이었고, 수양대군의 딸(세령)에겐 아버지뻘 나이였으니 둘의 연인 관계 설정은 지나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420년이나 지난 고종 10년. 서유영이 <금계필담>이라는 설화집을 펴냈다. 그 속에 실린 민담 중에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부부의 연을 맺고 숨어살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서유영은 박승휘(후에 이조판서를 지냄)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정에 그 사연을 올렸더니 당시 승지였던 사람이 신빙성이 있을 만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한테는 전해지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리해 보건대 420년이나 지난 이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만 불구대천의 두 가문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은 그야말로 민담이 아니었을까.

- 2화 계유정난 <안평대군을 잡아라 (1)>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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